위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안드레이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1490)라는 그림입니다. 그는 한국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화가는 아니지만 단일한 사물에 원근법을 적용하는 단축법을 고안해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한 단축법이 아주 잘 드러난 대표작으로 흔히 꼽히는 것이 바로 위의 <죽은 그리스도>이죠.


예수를 묘사함에 있어서 저러한 극단적인 구도는 물론 신성을 제거한 듯한 담백한 묘사는 손발에 난 상처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다면 그가 예수가 아니라 어디서나 흔히 볼법한 필부가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후광이나 과장된 몸짓과 표정을 제거함으로써 극적인 효과를 배제시킨 이 그림이 오히려 '낮은 데로 임한' 예수의 숭고함을 가장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나 합니다. 이 그림은 어찌보면 만테냐의 우리 곁에 있는 신에 대한 내밀한 기도인 셈이죠.


이 그림이 죽음을 묘사하는 외적 방식과 그 종교적 아우라는 후대 작품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이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였습니다.



위 작품은 <요하네스 다이만 박사의 해부학 강의>라는 작품입니다. 렘브란트의 작품 중 유명한 것은 <툴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인데 그 작품 이후 20년이 훌쩍 지나서 경제적 위기를 겪을 때 의뢰로 그린 두 번째 해부학 강의 그림이죠.


위의 부분은 화재로 3/4이 소실되고 정상적으로 남은 부분인데 이 그림의 일부분에서 우리는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렘브란트는 만테냐의 작품을 소장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위 작품에서 느껴지는 영향은 외적인 부분에 국한됩니다. 시체를 하나의 물건처럼 취급했던 당대의 시선과 두개골을 들고 있는 사람의 표정을 볼 때 단축법으로 그려진 시체에서 만테냐의 원본에 있던 성스러움을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만테냐의 그림은 1993년에 러시아 감독 즈비아긴체프의 영화 <더 리턴>에서 다시 한 번 재현됩니다. 12년만에 돌아온 아버지와 두 아들의 이야기인 <더 리턴>은 마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종교적 메타포로 가득차 있습니다. 여기서 즈비아긴체프는 초반에 잠든 아버지의 모습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와 똑같은 구도로 포착합니다. 감독은 만테냐의 그림을 빌려온 이 장면을 파멸적 결말에 대한 복선으로 활용합니다.


만테냐의 영향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얼마전에 공개된 신정환의 병원 입원 장면입니다.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한 유명인들의 사진은 저렇게 전신을 담아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대다수가 자신의 고통을 강조하기 위해 얼굴 표정이 잘 보일 수 있도록 바스트 샷이나 클로즈 업 정도가 일반적이었죠. 신정환의 사진에서 그의 얼굴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대중에게 전달함으로써 공감을 얻어야 되는 대중 연예인이 저런 사진을 공개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골동품 수집을 취미로 갖고 있기도 하다는 예술적 감성의 신정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무려 그는 병원에 누워있는 자신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와 비슷한 구도로 찍은 것이죠. 이 구도를 통해 만테냐의 원본에 있는 필부와 희생양, 그리고 죽음이라는 메타포들을 모두 끌어옵니다. 신정환은 유명 연예인이지만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이고, 언론에 의한 희생양이며, 생과 사의 경계에 서있다는 의미를 한 장의 사진에 모두 구현합니다.


예술 작품도 아닌 곳에서 만테냐의 그림을 차용함으로써 그 원본의 의미를 고스란히 가져오는데 성공한 신정환을 저는 우리 시대의 현대예술가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쾌차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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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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